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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곡 리뷰] 철저한 원곡파인 내가 알리의 ‘가슴앓이’ 앞에서는 무너진 이유

    인생을 살다 보면 어떤 가수를 만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운명’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가수 알리(ALi)가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제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노래 ‘서약’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평생을 바쳐 한 사람만을 사랑하겠다는 절절한 맹세를 담은 그 곡을 알리의 목소리로 마주했던 순간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단순한 유행가가 아니라, 영혼을 담아 부르는 듯한 압도적인 울림에 단숨에 매료되었죠.

    만약 그때 ‘서약’이라는 노래를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아마도 알리라는 대단한 보컬리스트를 영원히 모른 채 살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제가 깊이 알고 있는 알리의 노래는 이 ‘서약’이 유일합니다. 다른 히트곡들은 아는 게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단 한 곡이라도 내 영혼을 흔들었다면, 그 가수는 이미 저에게 최고의 가수입니다.

    그렇게 ‘서약’으로 시작된 강렬한 이끌림을 따라 흘러온 종착지가 바로, 1985년 듀오 한마음이 발표한 이래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아 온 명곡, ‘가슴앓이’였습니다.

    1. 나는 ‘김광석’을 사랑하는 철저한 원곡파다

    사실 저는 철저한 ‘원곡파’입니다. 리메이크 곡이 아무리 세련되고 화려해도, 원곡자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세월의 무게와 오리지널리티의 깊이야말로 노래의 진짜 영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는 가수 김광석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그의 노래를 참 많이 알고 있고, 제 인생의 거의 유일한 ‘최애 가수’로 꼽는 사람입니다. 김광석의 노래들이 주는 그 투박하고 담담한 오리지널 감성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성역과 같죠.

    박중훈의 ‘비와 당신’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 럼블피쉬가 시원하고 애절하게 부르는 버전을 참 자주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 곡을 찾는 이유는 오직 하나, 그게 ‘박중훈의 비와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그가 거칠고 쓸쓸하게 툭툭 뱉어내던 그 오리지널의 서사가 본질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중들이 임영웅이 부르는 노사연이나 김광석의 노래에 열광하는 이유도 본질은 같습니다. 사실 저는 임영웅의 노래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노래를 모르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압니다. 사람들이 그 재해석에 감동하는 바탕에는, 결국 원곡자가 남긴 세월의 무게가 단단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저는 언제나 그런 원곡의 가치를 숭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 낯선 동양인 여가수를 향한 싸늘한 시선, 목소리 하나로 뒤집다

    알리라는 가수의 특별함은 비단 저 같은 국내 ‘원곡파’들만 느끼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오래전 알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초대형 야외 공연장인 헐리우드볼(Hollywood Bowl) 무대에 올랐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객석에는 현지 교민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객들도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알리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을 때, 현지인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미지근함’ 그 자체였습니다. 동양에서 온, 이름도 낯선 여가수를 향해 리액션 좋은 서양인들조차 그저 팔짱을 낀 채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는 식의 서늘한 시선을 보낼 뿐이었습니다. 기대감 없는 차가운 공기가 무대를 감싸고 있었죠.

    하지만 알리가 마이크를 잡고 첫 소절을 뱉는 순간, 객석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마이크를 뚫고 나오는 알리 특유의 묵직하고 소울풀한 음색에 외국인들은 눈을 크게 뜨기 시작했습니다. 가사의 뜻은 단 한 줄도 알아들을 수 없었을 텐데도, 목소리에 배어있는 짙은 서글픔과 한(恨)의 정서가 언어의 장벽을 산산조각 내며 그들의 심장에 그대로 내리꽂힌 것입니다.

    곡이 하이라이트로 치달으며 알리가 탄탄한 발성으로 폭발적인 고음을 뿜어내자, 팔짱을 끼고 있던 외국인들의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기교를 넘어선 거대한 감정의 서사에 완벽하게 압도당한 것이죠. 노래가 끝나고 마지막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미지근했던 객석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천지를 흔드는 듯한 폭발적인 환호와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목소리 하나로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서양인들의 심장을 완벽하게 굴복시킨, 그야말로 전율 돋는 명장면이었습니다.

    3. 알리의 ‘가슴앓이’, 원곡을 뛰어넘은 유일한 기적

    이처럼 외국인들마저 단숨에 매료시키는 알리의 압도적인 서사는, 제 견고하던 원곡파 철학마저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신기하게도 알리의 버전을 들을 때는 원곡 가수의 노래를 다시 듣고 싶다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한마음의 오리지널 통기타 감성을 찾아 헤맸어야 할 제가 말입니다. 김광석만을 바라보며 원곡의 무게를 따지던 제 까다로운 기준에서, 알리의 ‘가슴앓이’는 내가 아는 원곡을 뛰어넘는 유일한 케이스라고 할만합니다.

    알리는 원곡이 가진 쓸쓸한 독백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청자의 심장을 완전히 장악해 버립니다. 도입부의 숨 막히는 담담함부터 후반부 처절한 고백으로 이어지는 폭발적인 서사는, ‘가슴앓이’라는 노래의 주인을 제 마음속에서 온전히 ‘알리’로 재정의해 버렸습니다. 원곡의 그림자를 완벽히 지워버릴 만큼 압도적인 싱어, 그게 바로 알리였습니다.

    4. 일요일 저녁, 술 한잔과 ‘서약’이 주는 운치

    한 주를 고단하게 보내고 찾아오는 일요일 저녁. 조용히 불을 밝히고 술 한잔 마시면서 유튜브 뮤직으로 듣는 ‘서약’은 참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운치를 더해줍니다.

    아는 노래라고는 단 한 곡뿐인 가수이지만, 그 취기 끝에 찾아 듣는 알리의 ‘가슴앓이’는 원곡의 존재마저 잊게 만들 정도로 가슴 깊은 곳에 가장 완벽한 여운을 남깁니다.

    철저한 원곡파의 고집마저 단숨에 꺾어버린 이 위대한 보컬리스트의 절창을, 오늘 밤 여러분도 조용히 눈을 감고 온전히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원곡의 무게를 아는 이들에게는 평소와 전혀 다른,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먹먹한 감동이 찾아올 것입니다.

    여기 알리의 가슴앓이를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