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다시 시작될 치열한 한 주를 앞둔 일요일 저녁. 여러분은 주말의 끝자락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저는 음악을 들을 때 가수의 삶과 가사 속 진심을 통째로 마주하는 철저한 ‘원곡파’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수 김광석을 참 좋아합니다. 김광석의 노래는 어떤 정교한 해석이나 이유도 필요 없이, 단지 ‘김광석이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 그의 인생과 목소리를 온전히 즐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개의 가수들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갈아 넣은 ‘단 한 곡의 결정체’가 있기 마련입니다. 김광석 같은 특별한 존재를 제외하면, 저에게 가수 최백호의 유일한 결정체는 바로 ‘낭만에 대하여’입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 술 한잔을 기울일 때면 어김없이 이 노래를 틀어놓습니다. 그런데 이 곡을 가만히 음미하다 보면 가슴 한구석이 소름 돋을 만큼 먹먹해집니다. 이 노래는 지나간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막연한 복고풍 노래가 아닙니다. 그것은 최소한 과거의 낭만이나 미래의 희망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지독한 현재의 후회와 아픔’을 노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최백호가 노래한 ‘남겨진 자의 현재’와 부산의 공기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가사에 등장하는 옛날식 다방과 도라지 위스키는 최백호 선생님의 청춘과 고향이기도 한 부산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실적인 소재들입니다. 실존하는 기억들이 ‘현재의 고통’으로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기에, 가사 한 줄 한 줄이 이토록 시리고 사실적입니다.
사실 저는 그 시절 배우 고(故) 김자옥이라는 인물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만큼은 철저히 최백호라는 한 남자의 입장에 몰입하게 됩니다.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낸 화장 뒤로 지워진 꿈들이 그리워 내가 우네”
당대 최고의 화려한 여배우였던 김자옥 님의 모습 뒤에 가려진 외로움과 ‘지워진 꿈들’. 남자는 이별을 겪고 나서야, 부산의 쓸쓸한 공간에 홀로 남겨진 ‘지금’에서야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이 나이에 무슨 실연의 달콤함이 있겠냐”며 미래의 희망 따위는 접어둔 채, 텅 빈 방 안에서 술잔을 채우며 홀로 마주하고 있는 ‘지독한 현재의 책임감과 후회’가 최백호의 거친 목소리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단지 저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주는 이 묵직한 진심이 참 좋습니다.
2. 오승근의 ‘있을 때 잘해’를 듣고 내가 화가 난 이유
흔히 이 노래를 이야기할 때, 훗날 김자옥 님의 마지막 곁을 지켰던 가수 오승근의 히트곡 ‘있을 때 잘해’를 떠올리며 *”거 봐라, 떠나고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했어야지”*라며 가볍게 말하곤 합니다.
물론 당사자들이 아니기에 제 짐작이 틀릴 수도 있고 타인의 사생활에 제삼자가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을 온전히 펼치는 제 블로그이기에 소신을 밝히자면, 저는 오승근의 그 노래를 들으면 화가 납니다. 그리고 저는 철저히 ‘최백호파’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부부라는 인연은 그렇게 “있을 때 잘해”라는 경쾌하고 가벼운 유행가 가사 한마디로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생각해보면 이 가사는 부부의 언어라기보다,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연인 시절’에나 어울리는 밀당의 말입니다. 연애할 때야 마음에 안 들고 확신이 없으면 헤어지면 그만이니 “있을 때 잘해, 안 그러면 나 떠난다”는 경고가 통하겠지요. 정말 마음에 안 들고 안 맞을 것 같았다면, 부부가 되기 전에 진작 헤어졌어야 맞습니다.
3. 결혼을 왜 한 거냐, 부부라는 약속의 무게
부부란 이 험난한 세상을 같이 헤쳐나가는 동반자입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살다 보면 지옥 같은 순간도 오고 미워 죽겠는 날도 오지만, 어떻게든 부딪히고 깨지면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고 끝까지 지키려고 버텨내는 게 진짜 부부입니다.
요즘 보면 생각보다 돈을 덜 벌어온다는 이유로, 혹은 형편이 좀 어려워졌다고 해서 쉽게 이혼을 선택하는 부부들이 보입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제가 보기엔 그건 결혼을 한 게 아닙니다. 조건이 나빠지면 언제든 파기해 버리는 얄팍한 계약 관계일 뿐, 부부라는 묵직한 약속을 맺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혼할 거면 대체 결혼은 왜 한 걸까요?
진짜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법적인 사유들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학대하거나, 도박으로 가정을 완전히 파탄 내거나, 혹은 상대방의 부모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당한 대우를 하는 등의 ‘특별한 이유’라면 도저히 손을 잡고 갈 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런 치명적인 이유도 없으면서 단지 성격이 안 맞아서, 서운하게 해서, 돈을 못 벌어와서 쉽게 갈라서는 사람들은 결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였다면, 그런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끝까지 버텨내야 합니다. 그 깊은 삶의 무게와 책임감을 유행가 가사처럼 툭 던지는 건 너무나도 가볍고 얄팍하게 느껴집니다.
글을 마치며 : 진짜 낭만과 책임에 대하여
이 글은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것도 아니고, 누구를 비방할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매주 일요일 밤 술 한잔에 기댄 채 적어 내려간 원곡파인 저만의 생각입니다.
부부는 잘못하면 헤어지는 서운함의 관계가 아니라, 잘못하더라도 어떻게든 붙잡고 길을 함께 찾아야 하는 ‘책임의 관계’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이 아픈 노래를 통해 배웁니다.
이 글을 쓰며 왜 저라는 놈은 자꾸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과 통찰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나만의 공간, 제 블로그이기에 이 밤에 솔직한 마음을 적어봅니다.
오늘 밤에는 내 인생의 가장 묵직한 인연들을 돌아보며, 쉽게 흔들리지 않고 함께 버텨내겠다는 다짐을 담아 조용히 잔을 부딪쳐 봅니다. 지극히 낭만적이고도 묵직한 현재의 다짐을 담아서 말이죠.